새벽 묵상

시편 123편 - 우리 하나님을 바라며

JVChurch 2025. 1. 25. 02:36

샬롬! 참 좋은 아침입니다!!  

 

본문의 시는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중에 네번째 시입니다. 그런데 시가 담고 있는 내용은 결코 성전에 올라가는 내용이 아닙니다. 오히려 시인은 먼 곳에 노예가 되어 왔기 때문에 성전에 올라갈 수가 없습니다. 그 대신에 그는 눈을 들어서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그러면서 멸시와 조롱을 당하고 있는 자신을 긍휼히 여겨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노예가 된 시인은 자유가 박탈되었습니다. 주인들은 손가락으로 노예들에게 지시했습니다. 주인의 손가락을 보며 지시내용을 알고 그에 맞게 행동해야 했습니다. 자유인으로 살아가 어느 날 갑자기 이런 노예로 전락해서 사는 삶은 정말 견디기 힘들 만큼 고통스럽고 모욕스러웠습니다. 이제 시인이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긍휼 뿐이었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이 노예 상태에서 벗어날 가능성은 없었습니다. 이 지긋지긋한 노예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경우는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개입 외에 다른 것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간절한 소망이 무색할 정도로 현실은 참담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모욕과 멸시가 일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점점 풀려나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하나님 앞에 예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소망이 희미해 집니다. 그런데 시인은 그러한 소망이 희미해질수록 더 악착같이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래서 현실에 매몰되어 죽지 못해 사는 인생이 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습니다. 이 시의 내용을 통해서는 시인이 어떤 결말을 맞이 했는 지는 알 수 없습니다. 시인이 간절히 원했던 대로 정말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 고향으로 돌아와 꿈에 그리던 성전에 올라가 하나님께 예배 했는 지, 아니면 포로 상태에서 풀려나지 못하고 곧 바로 영광의 나라로 올가갔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 둘 중에 어느 것이 더 복된 것인지 알 수도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시인은 노예가 된 상태에서 간절히 하나님을 바라보았으며, 하나님 앞에 예배하기를 간절히 소원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 스스로 어느 한 가지 멍에를 멜 때에만 가장 자유로울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바울 사도는 스스로 그리스도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그는 가장 자유로울 수 있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멍에를 스스로 메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럴 때에만 가장 자유롭고 존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