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참 좋은 아침입니다!!
본문의 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가 되고 난 후에 지은 시입니다. 이 시는 그들이 포로 되어 간 곳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그리고 어떤 상태에 있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온 유대인들은 주로 농로로 일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 이유가 그발강 근처에 유대인들이 모여 살았는데, 그발강은 논에 물을 대어 주는 일종에 농수로 역할을 하는 강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주로 농로로 지냈는데,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마다 그발강가에 모여 고향을 그리워하며 울었습니다. 그 그발강가에서 유대인을 위한 선지자로 부름 받은 사람이 에스겔이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제 2차 바벨론 포로 때, 끌려와서 다른 유대인들과 함께 농로로 살다가 선지자로 부름을 받고, 마른 뼈 환상과 성전환상을 통해 유대인드에게 고향 땅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비전과 꿈을 주었습니다. 유다 백성들은 포로 되어 간 곳에서 자기들을 포로가 되게 한 바벨론 사람들과 그 일에 일조한 에돔 사람들의 멸망을 바라고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시의 핵심이 어디에 있느냐?는 것입니다. 소중한 것들을 모두 잃고 포로된 땅에서 처량하게 고향을 그리워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 이 시의 목적인지? 아니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런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다른 구원을 바라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 이 시의 목적인지? 이 점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본문에서 시인은 바벨론 사람들이 조롱하며 성전 노래를 불러보라는 요구에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그 대신에 에돔과 바벨론의 멸망을 이야기 합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바벨론에 있는 동안에는 가장 유행했을 것 같은 저항시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바벨론 사람들이 유다 백성들을 짓밟아도 결코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저항하는 정신이 본문의 시에 들어 있습니다. 그러면 본문의 시가 정치적인 저항시일까? 결코 그렇지는 않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본문의 시는 신앙적인 저항시입니다. 즉 아무리 바벨론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짓밟아도 자신들이 누리는 영혼의 자유는 빼앗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육체는 괴롭힘을 당할 수 있지만 믿음은 얼마든지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가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축복을 마음 껏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70년간 육체적으로는 고통을 받지만, 영혼의 은총과 자유를 누렸던 유대인들이 다시 유대 땅으로 돌아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다시 이어갔던 것입니다. 절망의 땅에서 꾸었던 꿈이 실현된 것입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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