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망과 불평이 없는 교회?
지난 번 교회에서 목회할 때, 어느 분이 “교회에 원망과 불평하는 사람들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하시며 그것이 새해 소망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그냥 엷은 미소만 지어 보였습니다. 소박해 보이는 그 소망은 현실적으로 남북이 통일이 되는 것 보다 더 어려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 두 사람만 살았을 때도 원망과 불평이 있었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직접 받는 제자들 중에도 원망과 불평이 있었음은 물론이고 심지어 배반자도 있었습니다. 부부사이에도 혈연 공동체인 가족관계 안에서도 원망과 불평이 있는데, 교회에서 원망과 불평이 없기를 바라는 것은 그야말로 황소가 새끼는 낳는 것 만큼이나 어려운 일입니다.
서로 다른 삶의 배경을 가진 이들이 모여 이룬 교회 공동체에서 원망과 불평이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원망과 불평하는 사람들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참 원망과 불평이 많았습니다. 마주대하는 현실이 척박하고 고달팠기 때문입니다. 마실 물도 넉넉하지 않았고, 먹는 것도 변변치 않았습니다. 불안정한 광야 생활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불평하는 사람들을 통해 이루어지는 일은 없었습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긍정하는 사람들을 통해 광야 생활도 끝났고, 가나안 정복도 이루어졌습니다. 원망과 불평은 마귀적인 속성이어서 파괴적인 반면, 긍정과 감사는 하나님의 속성이어서 건설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정이나 교회 공동체에서 원망과 불평은 있을 수 있는 일이고 실제로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은 원망과 불평하는 사람 중에 적어도 “나”는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원망과 불평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복”있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정이나 교회에 원망과 불평의 마음이 들 때, 스스로에게 놀라고 적어도 그 말을 하지 않고, 그 대신 긍정과 감사의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정말로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야말로 파괴하는 사람이 아니라, 세우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역사를 파괴하는 사람이 아니라, 세우는 사람을 통해 이루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