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욥기를 보며 경청과 공감이 얼마나 중요한 지 새삼 느낍니다. 욥의 세 친구들은 경청이나 공감과는 좀 거리가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고통 받는 욥을 위로하러 왔다는 사람들이 욥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얼마나 아파하는 지를 헤아리는 것에는 도통 관심이 없습니다. 그 보다는 자신들의 신념과 경험을 앞세웠습니다. ‘고난은 죄의 결과’라는 아주 단순한 생각으로 욥에게 회개를 강요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곤경에 처한 욥을 돕고 사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사실 그것은 욥에게 고통만 더하는 견디기 힘든 폭력이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폭풍처럼 밀어 닥친 고통 앞에 넋이 나간 욥이 땅바닥에 털썩 주저 앉아 있습니다. 자식들은 모조리 죽고, 그 많던 재산도 사라졌습니다. 아내도 떠나고 몸은 병들어 머리부터 발끝까지 성한 곳이 없습니다.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 지, 황망함에 넋이 나갔습니다. 이런 상황에 있는 욥에게 꼭 필요한 것은 정답이 아니라, 위로입니다. 위로라는 말을 헬라어로 보면 “곁에 서다"는 뜻이 있습니다. 곁에서 서서 함께 울어주고 아파해 주는 것이 위로입니다. 위로는 꼭 말을 통해 전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위로에 옳은 말, 멋진 말, 정답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말이 아니라, 얼굴 표정, 상대를 바라보는 눈길, 손끝으로 전해는 온기로도 위로는 얼마든지 전해질 수 있습니다.
벼랑 끝에서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들은 꼭 가까운 사람들에게 자기 생각을 우회적으로 전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의 경청과 공감은 소중한 생명을 구하는 위력을 발휘할 수있습니다. 어려운 상황에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경청해주고 공감해 주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 천사처럼 보일 것입니다. 상대의 눈을 보고 고개를 끄덕여 주며 경청해주고 공감해 주는 사람은 새로운 생명의 기운을 주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절실하지 않은 곳은 세상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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