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묵상

욥기 32장 - 엘리후의 등장

JVChurch 2024. 7. 2. 04:03

샬롬! 참 좋은 아침입니다!!

 

욥의 독백이 끝나자, 엘리후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엘리후는 람족속 부스 사람입니다. ‘엘리후'라는 이름의 뜻은 ‘그분의 나의 하나님이시다'입니다. 엘리후는 젊었지만, 점잖고 겸손한 성품의 사람이었습니다. 또 올바른 분별력과 용기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엘리후는 욥이 자신을 의롭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못 마땅해 했습니다. 또 욥이 자신을 의롭다고 주장할 때, 친구들이 그의 주장에 적절한 반론도 펴지도 못하면서 계속 욥을 죄인 취급한 것에 대해 불편해 했습니다. 지금까지 엘리후는 욥과 세 친구들의 길게 이어진 대화에 끼어 들지 않고 곁에서 지켜 보고만 있었습니다. 이유는 욥이나 세 친구들에 비해 나이가 많이 어렸기 때문입니다. 엘리후는 조금이라도 세상을 오래 산 연장자들이 더 지혜로운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하고 싶은 말을 꾹 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욥과 세 친구들의 대화를 보며, 엘리후는 연장자라고 해서 더 지혜롭거나 더 공의롭지 않다는 사실을 깨습니다. 사람의 지혜와 총명은 인생의 경험에서 얻어질 수도 있으나, 궁극적으로는 영적인 피조물인 인간에게 부여하신 하나님의 무궁하신 지혜로 부터 얻어집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영혼은 여호와의 등불로서 사람의 깊은 속을 살필 수 있는 지혜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과 지혜의 근본이 된다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엘리후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욥과 세 친구들의 대화에 끼어 들며, 두 가지를 먼저 강조합니다. 첫째 자신이 변론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먼저 말합니다. 자기가 아무리 참고 기다리고 있어도 욥의 주장을 꺾을 만한 사람이 없어서, 불가피하게 개입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둘째, 자기의 변론은 공정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어느 한편을 비호하거나, 아첨하는 등의 불공정한 말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엘리후가 등장합니다. 엘리후의 말에는 굉장히 예리한 시각으로 정확하게 지적하는 부분도 있지만, 그 역시 완벽하지는 않았습니다. 나름의 한계가 있었습니다. 엘리후도 욥의 세 친구들처럼 욥을 이해시키고 위로해 주는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오늘의 우리도 말로 다른 사람을 바꾸거나 변화시키는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 보다는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에 대해 진솔하게 말하는 편이 낫습니다. 사람을 바꾸고 변화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참 좋은 아침입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