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묵상

욥기 36장 - 하나님에 대한 합당한 반응

JVChurch 2024. 7. 5. 19:26

 

샬롬! 참 좋은 아침입니다!!

 

욥이나 세 친구에 비해 비교적 하나님에 대해 균형잡힌 시각을 가진 엘리후였지만, 그 역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제한적이었습니다. 그 사실이 본문에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엘리후는 자신도 하나님에 대한 지식에 많은 한계가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한 채, 욥과 세 친구들을 향해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라고 자신있게 말을 하며 입을 엽니다. 일평생 성경을 연구했던 노 신학자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성경을 읽어가면 읽어갈 수록, 성경을 연구하면 할수록 하나님에 대해 더 몰라가더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점점 수수께끼 같은 분이 되셨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해 알면 알수록 하나님이 내 속에서 점점 커져만 가더라는 겁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우리로 하여금 그 하나님 앞에 부복하고 그 분의 영원함과 무한함 그리고 그분의 통치와 영광 앞에 순종하게 만든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아는 사람의 바른 모습이 아닐까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 경험을 통한 서술이 아니라,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은 우리가 그 분을 알고 경험하고 느끼고 순종함으로 서게 되는 삶을 통해 나타나게 됩니다. 엘리후는 하나님께서 고난을 허용하시는 것은 자신의 허물과 교만을 깨닫고 죄에서 돌이키기 위함이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구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면 회복되겠지만, 끝까지 거부하면 망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엘리후의 생각을 뒷받침할만한 성경구절을 꽤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엘리후의 말이 100% 맞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다른 목적을 위해서도 고난을 사용하시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욥과 같은 경우는 죄에서 돌이키는 목적 보다는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에 대해 더 분명히 알게 하시기 위해 고난을 허락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삶의 어떤 결과와 내용을 가지고 사람들을 향해 ‘고난이 하나님의 징계'라는 도식으로 정죄하는 것을 절대로 금해야 합니다. 엘리후는 하나님의 크심을 창조세계를 통해 묘사하고 있습니다. 즉 구름을 통해 비를 만들고 내리시는 하나님의 크심을 인간은 감히 측량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같은 내용이라도 어떤 사람에게는 심판과 회복으로, 또 어떤 사람에게는 축복으로  다가가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뛰어난 지혜이며 또한 무한하신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그런 면에서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합당한 반응은 감탄과 찬송뿐입니다. 참 좋은 아침입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