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를 하면서 늘 아쉬운 것이 있습니다. 준비한 내용을 다 전달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설교 준비하면서 깨달은 아주 중요한 내용도 설교 주제와 특별히 관계가 없으면 버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설교에 군더더기가 붙어 매끄러집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번 주에도 그런 내용이 있어 설교에서 사용하지는 못하지만, 그냥 지나치기는 아쉬워서 이렇게 몇 자 적습니다. 진리 못지 않게 진리를 전달하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를 거쳐 예루살렘을 향해 가시다가, 한 마을에 머물게 되셔습니다. 그런데 그 마을 사람들이 예수님 일행을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불같은 기질의 야고보와 요한이 격분합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을 냉대하는 마을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었고 괘씸하기까지 했습니다. 귀신을 쫓아내시고, 죽은 자를 살리실 뿐 아니라, 오병이어의 이적을 일으키시고, 곧 이스라엘의 왕이 되실 예수님을 몰라보는 마을 사람들이 너무나도 야속해서 분노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야고보와 요한을 꾸짖으시고 조용히 다른 마을로 이동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모습을 보며, 진리 못지 않게 진리를 전달하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진리를 모를 뿐 아니라, 아예 관심도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무엇보다도 진리를 전달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중요합니다. 그 태도에 따라 진리에 호감이 생길 수도 있고, 반감을 가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기독교에 대한 사회적 호감도가 떨어지는 이유 중에 가장 큰 것은 진리를 전달하는 태도가 너무 거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야고보와 요한이 보인 태도처럼 상대를 이해할 수 없다거나 무시하는 태도로는 진리가 진리로 전달될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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