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 칼럼

2022년 7월 31일 - "환대합시다!!"

JVChurch 2022. 7. 31. 23:34

요즘 핫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라는 드라마에 이런 대사가 있습니다. “바다 속의 돌고래는 평균 40년을 살지만, 수족관 속의 돌고래는 4년 밖에 살지 못한다" 주인공 우영우의 대사인데 참 씁쓸했습니다. 사람들은 오랜 세월 동안 동물을 길들였습니다. 야생 늑대를 길들이고 품종개량을 거듭하며 개를 반려동물이 되게 했습니다. 요즘 반려동물 키우는 가정은 열 가정 중에 세 가정이 넘고 종류도 아주 다양하다고 합니다. 기니피그, 고슴도치, 햄스터, 스컹크, 거북이, 심지어 뱀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돼지도 반려동물로 키우기도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말 끔찍한 것은 동물이 아니라 사람을 길들이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유익을 위해 같은 사람을 길들여 노예가 되게 했습니다. 노예에게 노예로 태어나고 살아야 하는 것이 절대로 바꿀 수 없는 운명이라고 세뇌했고, 저항하면  가혹하게 탄압했습니다. 인도 같은 경우는 윤회라는 힌두교 교리를 동원해서 신분제를 정당화합니다. 하층 신분으로 태어나 평생 충실하면 그 공덕으로 다음 생에는 높은 신분으로 태어난다는 생각을  주입했습니다.  거짓된 종교 신념을 주입해서 사람들을 길들이고 영적으로 육적으로 노예로 만드는 이단자들도 있습니다. 아주 끔찍한 범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환대하셨습니다. 환대라는 것은 능력이상 필요 이상으로 상대방을 대접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상대가 자유롭고 편안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는 의미입니다. 세리나 창기들은 유대인들을 만나면 불편했습니다 그래서 서로가 회피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면 모두가 편안 했습니다. 잘 어울렸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세리나 창기와 같은 사람들은 천하고 니고데모나 아리마대 요셉 같은 사람들은 귀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앞에서 그들은 차이가 없었고, 모두가 다 예수님 앞에서 편안했습니다. 예수님의 환대 때문입니다. 상대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인정해 주고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지 않고 환대한다면, 다른 사람들을 편안하고 자유하게 할 수 있습니다. 

 

 

 

Photo by Hannah Busing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