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는 수 많은 만남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부모와 자식으로 만나는 천륜도 있고, 의지적인 만남도 있습니다. 오가며 스치듯이 만나는 사람도 있고 오랫동안 이어지는 만남도 있습니다. 기쁨을 남기는 만남도 있고, 아픔을 남기는 만남도 있습니다. 만남은 다양한 이야기와 이미지로 남고 삶에 깊은 영향을 줍니다. 2,000년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사도라는 바울의 삶에서 바나바를 빼 놓을 수 없습니다. 바나바가 없었다면, 바울은 기독교 역사 아예 등장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바나바는 구브로 출신이고 레위지파에 속한 사람입니다. 그의 히브리식 이름은 요셉입니다. 그런데 그는 늘 요셉이라는 이름 대신 ‘바나바’라는 별명으로 불렸습니다. 바나바라는 이름의 뜻은 ‘위로의 아들'입니다. ‘위로'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따뜻한 말이나 행동으로 괴로움을 덜어주거나 슬픔을 달래 주는 것'입니다. 바나바는 다른 사람의 짐을 덜어주고 슬픔을 달래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교회에서 신망이 높았습니다. 안디옥교회가 생겼을 때, 예루살렘교회는 바나바를 안디옥교회 사역자로 파송합니다. 안디옥교를 맡은 바나바는 길리기아 다소에 낙향해 있던 바울을 찾아가 동역자로 세웁니다. 워낙 악명 높았던 바울의 회심을 사람들이 믿지 않아,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었지만, 바울은 낙향해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바울을 안디옥교회의 지도자로 세우고, 위대한 사도가 되는 길을 열어 준 이는 바로 바나바였습니다.
마가도 바나바를 빼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 사람입니다. 마가는 바나바의 조카였습니다. 마가는 1차 선교여행당시 바울과 바나바를 따라 나섰다가 중간에 돌아온 실패자였습니다. 바나바는 그런 마가를 데리고 바울과 별도로 제 2차 선교여행을 떠나 그의 실패를 지워줍니다. 또 베드로 사도의 통역관으로 사역하게 하고 최초의 복음서였던 마가복음을 기록하게 합니다. 가정이나 교회나 일터에서 꼭 필요로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지적하는 사람이 아니라, 바나바 같은 사람입니다. 위로해 주고, 믿어주고, 인정해 주고 기다려 주는 사람입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의 지적으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따뜻한 위로와 인정을 통해 변하기 때문입니다. 바나바같은 사람이 많을 때, 교회는 교회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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