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 옷을 잘 입는 분들이 있습니다. 특별히 고가의 유명 메이커가 아닌데도 잘 맞춰 입어서 단정하면서도 세련되고 참 근사해 보이게 합니다. 옷을 고르고 잘 매치시키는 안목이 있는 분들입니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가보면, 같은 그림 앞에서 눈을 떼지 않고 몇 시간씩 서 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헨리 나우웬 같은 사람은 렘브란트가 그린 ‘탕자의 귀향'’이라는 단 한점의 그림을 일주일 동안 매일 전시관 개관시간 부터 문닫을 때까지 보았다고 합니다. 출석체크 하듯 점찍고 지나가는 식으로 그림을 보는 저같은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여간 부러운 것이 아닙니다. 헨리 나우웬은 렘브란트의 그림을 보고 일주일 동안 본 후, ‘탕자의 귀향’이라는 책을 쓰기도 했습니다. 그림을 보는 안목이 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옷을 잘 고르거나 그림을 보는 안목처럼, 영적인 안목도 있습니다. 바울사도의 행적을 보면 그의 영적인 안목이 두드러집니다. 바울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서 가장 희망적인 메시지를 줍니다. 그것이 그의 옥중서신입니다. 슬퍼할 수밖에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 기쁨을, 절망적인 상황에서 희망을 노래합니다. 에서와 야곱은 쌍둥이 형제였지만, 영적인 안목에는 차이가 많았습니다. 에서의 눈에 ‘장자권'은 팥죽 한 그릇의 가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눈에는 어떤 수를 쓰더라도 심지어 그것이 부정한 방법이라 할지라도 써서 쟁취해야할 정도로 가치 있는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에서의 몫으로 돌아갈 장자권이었지만, 야곱이 쟁취합니다. 보는 눈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안목은 상황에 매몰되지 않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사방에 우겨쌈을 당하여 절망하고 낙담할 때, 뻥뚫려 있는 하늘을 보게 합니다. 영적인 안목이 없는 사람은 사방에 우겨쌈을 당하면 포기합니다. 더 이상 기댈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를 향해 그리고 하늘을 향해 뻥뚫려 있는 하늘은 그냥 하늘일 뿐입니다. 그것을 통해 희망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안목이 있는 사람은 뻥뚫린 하늘을 통해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의 약속을 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은 늘 녹록치 않습니다. 원하는대로 뜻하는 대로 되기 보다는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습니다. 그래서 슬퍼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기뻐하게 하고 정말적인 상황에서 희망을 노래하게 하는 영적인 안목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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