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 칼럼

형통의 의미

JVChurch 2023. 10. 17. 09:31

        오래 전에 QT를 대단히 좋아하시는 목사님과 교제한 적이 있습니다. 그 목사님은 대학 다닐 때부터 60이 넘은 지금까지 아침을 먹지 않은 적은 있어도 QT를 건너 뛴 적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목사님에게 QT는 아침에 일어나 양치하고 세수하는 것 만큼  자연스런 일상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목사님은 QT통해 받은 은혜로 당신의 삶이 형통하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한편으로는 부러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정말 저 목사님의 삶이 형통한 것일까? 그 목사님에 대해 많이 아는 것은 아니었지만 형통하다고 할 정도로 내세울 것이 많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분이 대단히 유명한 것도 아니고,  성공적으로 사역한 분도 아닌 것 같았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제가 생각하는 형통의 기준이 너무 세속적이었다는 부끄러운 마음이 듭니다. 

 

        사람은 누구나 형통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형통의 기준이 사람마다 다릅니다. 형통의 기준이 어떤 사람에게는 물질일 수도 있고, 명예일 수도 있고, 권력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돈이 많고 지위가 높고 권력을 가지면 형통한 삶이고 그렇지 않으면 형통한 삶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하는 형통은 무엇일까? 적어도 형통의 기준이 물질이나 명예 권력은 아닐 것입니다. 만일 그런 기준이라면 사울 왕은 형통한 사람입니다. 반대로 로마에서 참수형으로 생을 마친 바울 사도는 형통한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 중에 사울을 형통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고 바울을 형통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QT를 좋아하시는 그 목사님은 조기은퇴로 이민목회를 접고 지금은 한국에서 이 교회 저 교회를 다니시며 QT세미나를 인도하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목사님의 QT 사역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거나 대중적인 관심을 폭발시키는 것은 아니지만, 가는 곳마다 잔잔한 감동을 준다고 합니다. 그 목사님은 말씀을 보다 깊이 이해하기 위한 진지한 노력보다는 주관적인 깨달음을 강조한다는 지금까지 제기된 QT의 단점을 극복하고 매일 거울을 보듯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진솔하게 자신을 비추어 보는 훈련을 강조하신다고 합니다. QT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했던 당신의 경험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며 다른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그 목사님의 노년 사역이 참 부럽습니다. 화려하거나 두드러지는 않지만, 그 목사님의 삶이 형통하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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