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인백보 불여 백인일보(一人百步 不如 百人一步)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 사람이 백 걸음을 걷는 것보다 백 사람이 한 걸음을 걷는 것이 낫다는 뜻입니다. 지도자 한 사람이 앞서 100보를 나가는 것 보다 다함께 마음을 모아 1보를 내 딛는 것이 낫다는 말입니다. 교회에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이유는 교회의 본질은 일이 아니라,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사도가 보낸 서신서에 보면 수신 교회에 대한 감사가 빠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감사가 어떤 일의 결과나 성과에 대한 것이 아니라, 항상 교회의 지체인 성도 그 자체에 대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교회에서 하는 사역 자체가 무의미 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사역이 없으면 교회는 절대로 건강할 수도 없고, 심지어 생존도 불가능합니다. 사역은 꼭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교회가 사역을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의 본질은 앞서 말씀 드린대로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교회에서 사역의 역할은 무엇이어야할까요? 그것은 교회 지체들의 성장과 성숙을 위한 수단입니다. 그냥 교회에 출석만 하는 것으로는 영적으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사역이 뒤따라야 합니다. LA에서 사역할 때, 가까이에 새들백 교회가 있었습니다. 워낙 이름 난 교회여서 몇 번 찾아 가봤습니다. 교회 현관에 보니, 수백자루의 연필이 있고 그 연필을 깎을 수 있는 칼이 비치되어 있었습니다. 용도를 물으니 일종의 사역이라는 답을 들었습니다. 새들백 교회에서는 교회에 등록하고 일정 기간 출석한 교우들에게 연필 몇 자루를 깎아 제자리 비치해 놓는 일을 하게 했습니다. 그냥 몸만 교회에 왔다가 갔다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작은 일이지만 사역에 참여 시켜, 교회의 지체라는 소속감을 심어 줄 목적으로 만들어진 사역이었습니다.
사역은 개인의 영적인 성숙이나 교회 공동체의 활력과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사역이 지나치게 짐이 되어서는 안 되고, 사역을 하다 마음이 상해서도 안 됩니다. 한 사람이 지나치게 열심을 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 불편한 마음을 갖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다 이해할 수 있고 또 실제로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마음을 함께 기쁨으로 사역하는 자세가 참 중요합니다. 그럴 때, 개인도 영적으로 성숙하고 교회 공동체도 활력을 갖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