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묵상

욥기 17장 - 말의 위력

JVChurch 2024. 6. 10. 19:18

샬롬! 참 좋은 아침입니다!!

 

욥은 계속해서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호소합니다. 육체적으로는 기진맥진하여 숨쉬는 것 조차 힘든 지경입니다. 정신적으로는 조롱하고 비아냥 대는 자들의 말이 욥의 마음에서 떠나지 않고 머무르며 밤잠을 이루지 못하게 합니다. 몸이 아파서 자살하는 경우 보다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 상처를 받아 자살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흔히 ‘사람의 말은 듣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만 듣고' 신앙생활라는 말을 합니다.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귀에 들리는 말을 듣지 않을 재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사람은 사회적 동물입니다. 다른 사람과 건강한 관계를 이루고 살 때, 비로소 건강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지체가 연합하여 건강한 공동체를 이룰 때, 온전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인간관계를 파괴하고 건강한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것이 다름 아닌 ‘사람의 말'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여 추궁을 들을 때, 아담은 말로 자신의 잘못을 하와의 책임으로 돌립니다. 자신의 말로 하와의 잘못을 드러내면 상대적으로 자신은 더 의로울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욥의 친구들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동방의 의인으로 알려진 욥을 비난하여 깍아 내리면, 상대적으로 자신이 더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말과 생각이 욥과의 관계를 깨뜨리고 있는 것입니다. 어려움을 겪는 주변 교회들의 경우를 보면 그 시발점은 거의 예외없이 ‘말’입니다. 자신의 옳음을 입증하기 위해 타인의 틀림을 정죄하고 비난하고 깍아내리는 말, 그 말로 인해 공동체는 무너집니다. 친구들은 욥을 향해 ‘너의 고통은 너의 죄 때문'이라는 입장을 견지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말씀처럼 제 눈속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눈의 티를 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은혜와 사랑을 경험한 사람은 무슨 말을 하든지 ‘은혜와 사랑'으로 말하는 법을 터득합니다. 은혜와 사랑으로 말한다는 것은 무조건 귀에 달콤한 말만 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사도바울의 말처럼 무슨 말을 하든지 ‘사랑으로 하는 것'입니다. 즉 말하는 의도가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말 때문에 상처 받고 마음의 고통을 경험하셨다면, 십자가 사랑으로 온전한 치유를 경험하고, 이후로는 다른 상처 받은 심령을 치유하는 ‘상처입은 치유자'로 살아간다면 더 없이 복된 삶일 것입니다. 참 좋은 아침입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