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참 좋은 아침입니다!!
욥의 고통은 점점 더 가중되었습니다. 공감해 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공감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누구와도 소통할 수없어 더욱 답답하고 외로워졌습니다. 이제 소발이 두번째로 말을 합니다. 그런데 소발은 욥의 말에 경청해 주고 공감해 주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 한계는 대략 세 가지 정도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소발은 타인이 말할 때, 듣기 보다는 자기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이었습니다. 소발은 욥이 다른 친구들과 말할 때, 듣는체 하면서 자기 생각과 주장에 골몰하며 자기 차례를 기다렸습니다. 어떤 방식, 어떤 논리로 욥에게 말을 하면 보다 효과적으로 자기 생각을 전달할 수 있지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소발은 욥의 말을 경청할 수도 없고, 욥의 아픔에 공감할 수도 없었습니다. 상대의 말을 잘 들어주고 공감하기 위해서는 자기 생각을 꼭 그것도 멋지고 그럴듯하게 말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래야만 상대가 하는 말 뿐 아니라, 얼굴표정, 감정의 변화까지 세심하게 읽어내고 공감할 수 있습니다. 경청은 공감의 필수조건입니다. 둘째, 소발은 자신의 능력에 대한 과신이 있었습니다. 소발은 자신이 욥에게 말하면 욥이 충분히 받아들이고 합당한 반응을 보일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욥의 반응이 의외였습니다. 소발은 욥에게 회개를 촉구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욥은 회개는 커녕 자신이 당하는 고난에 대해 억울하다고 반응합니다. 그런 의외의 반응을 보며 소발은 자존심이 많이 상했습니다. 소발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을 얼마나 잘 설득시키는 사람인지를 드러내기 위해 회개를 촉구했던 것입니다. 소발은 욥을 충분히 이해하고 돕고자 하는 마음에서 아주 조심스럽게 욥에게 회개를 말하기 보다는 자신의 설득력을 드러내고 싶은 마음이 더 컸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반론을 펼치는 욥을 보며 마음이 상했던 것입니다. 셋째 소발은 욥이 죄인이라는 편견을 갖고 있었습니다. 편견은 무섭습니다. 상대에 대해 죄인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으면 상대의 말에 충분히 공감하기 보다는 왜곡되게 이해할 수 밖에 없고 불필요한 오해도 많이 하게 됩니다. 결국 소발은 욥의 말도 경청하지 못하고 공감도 못합니다. 욥과 만나지 못하는 평행선만 달릴 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경청없는 소통도, 소통없는 공감도, 공감없는 위로도 모두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내 이야기를 경청해 주고 충분히 소통해 주고 공감해 주는 마음 따뜻한 사람이 필요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참 좋은 아침입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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