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LA에서 사역할 때, 교회 교육관에 벼룩 소동이 일어난 적이 있었습니다. 여름철이었는데, 교회에 온 아이들이 집으로 벼룩을 옮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집집마다 난리가 났었습니다. 벼룩을 없애려고 대청소도 해보고 소독도 해보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결국 외부 업체에 용역을 주어 벼룩을 퇴치했습니다. 나중에 도대체 왜 교회 교육관에 벼룩이 생겨났는지 이유를 추적해 보았더니 교육관에서 잠을 잔 홈리스가 옮긴 것이었습니다. EM 교역자가 교회에 자주 찾아오는 홈리스를 불쌍히 여겨 교회 교육관에 잠자도록 했는데 그것이 원인이었습니다.
그 일을 겪으면서 헨리 나우웬이 “in the name of Jesus”라는 책에서 말한 제 1의 사랑과 제 2의 사랑이라는 말을 현실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헨리 나우웬은 예수님의 사랑을 제 1의 사랑, 그리고 사람의 사랑을 제 2의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제 1의 사랑은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고 부작용이 없는 완전한 사랑인 반면, 제 2의 사랑은 사랑하면서도 부작용이 있고, 상처가 있는 불완전한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선교지에 갈 때마다 제 2의 사랑의 한계를 실감합니다. 현지의 지체들과 함께 같은 자리에서 앉아 한끼의 식사도 같이 하기 어렵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그 분들끼리 재료를 사서 음식을 해드실 수 있도록 돈을 쥐어 줄 뿐이었습니다. 그 일은 현지 선교사의 요구사항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선교지에 있는 동안 건강을 유지할 수 없을 수 있다는 당위성에 위안을 받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것이 궁색한 자기 합리화인 것 같아 마음이 좀 불편할 때도 있었습니다.
결국 사람이 할 수 있는 사랑은 잘해야 예수님의 사랑을 비추는 그림자 정도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림자는 실체의 전반이 아니라, 형체 정도만 드러낼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이후 예수님의 제자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 주었던 사랑도 제 1의 사랑이 아니라, 제 2의 사랑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불완전한 제 2의 사랑을 귀히 보시고 거기에 주님의 사랑을 더하셔서 오늘도 지구촌 구석구석에서 복음의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계가 많을 수 밖에 없는 제 2의 사랑도 너무나도 소중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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