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은 어렵습니다. 혁명보다 더 어렵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고사하고 자기 자신 하나 바꾸는 것도 만만치 않습니다. 개혁이 어려운 이유는 저항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다이어트나 금연에 성공하는 경우보다는 실패하는 경우가 월등히 많습니다. 다이어트나 금연을 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길 것이 뻔하기 때문에 굳은 결심을 하고 시작하지만, 실패하는 이유는 저항 때문입니다. 저항을 견디는 것은 불편합니다. 익숙하지 않은 것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국 결심이 흐지부지 되고 또 다시 원래의 상태로 돌아갑니다. 그러다가 또 다시 굳게 마음 먹고 다시 시도하지만 저항이라는 높은 벽에 좌절하기를 반복합니다.
개혁은 본질을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개혁하기 위해서는 본질에서 이탈해 있다는 문제의식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중세기 교회가 성경을 독점하고 면죄부를 남발해도 사람들은 개혁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교회가 늘 하던 일이기 때문에 그러려니 했고, 또 그런 일에 익숙해졌기 때문니다. 르네상스의 영향으로 헬라어 원문으로 성경을 읽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비로소 당시 교회가 본질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는 문제의식에 공감했고, 교회가 개혁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종교개혁이 시작되었고, 그 결과 개혁교회가 탄생했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교회가 개혁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보헤미야의 얀 후스나 영국의 존 위클리프를 기준으로 보자면 약 600년전에, 독일의 마틴 루터나 스위스의 쯔빙글리를 기준으로 보면 약 500년 전에도 교회가 개혁되어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지금도 여전히 개혁의 목소리는 높습니다. 정직하게 말하자면, 교회는 시작부터 끝까지 개혁되어야할 공동체였던 것입니다. 교회는 스스로 부단히 개혁하지 않으면 본질에서 멀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이유는 교회는 곧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물을 거슬러 올라가지 않는 물고기는 떠내려 갈 수 밖에 없는 것처럼, 개혁하지 않는 교회는 부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초가 자신을 태움으로 존재하듯, 교회는 개혁함으로 존재합니다. 그리고 저항은 교회가 감당해야할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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