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묵상

시편 85편 - 하나님께서 행하신 구원의 묘수

JVChurch 2024. 12. 3. 04:17

샬롬! 참 좋은 아침입니다!!  

 

본문의 시는 유대인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후에 지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유대인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면서 생각하게 된 것은 과연 포로생활 70년으로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의 죄값이 모두 치러졌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에 누구든 노예에서 벗어나려면 반드시 몸 값을 지불해야 했는데,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몸 값을 지불한 적이 없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고레스 왕의 칙령을 통해 노예에서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유대인들이 더 불안했던 것은 아무리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왔다 하더라도 앞으로 죄를 짓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죄의 속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유대인은 또 다시 또 다른 나라의 노예가 될 수 밖에 없을 텐데, 이것을 어떻게 하느냐? 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감옥에 있던 사람들이 형기를 완전히 다 마치고 석방이 된 경우가 있는가 하면 형기를 다 마치기 전에 가석방되어 출소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형기를 다 마친 사람은 그래도 좀 나은 편인데 가석방이 된 사람은 조금이라도 법을 어기는 날에는 그 자리에서 바로 교도소로 다시 들어가게 됩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구원에 대해 묻게 됩니다. 우리가 받은 죄 용서가 완전한 것인가? 아니면 가석방에 불과한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구원의 묘수가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의 묘수를 통해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구원에 사랑과 정의를 완전하게 충족 시키셨습니다. 그에 대한 표현이 본문 10절에 나오는데 “긍휼과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 입니다. 사실 사랑과 정의는 동시에 충족할 수 없는 서로 모순되는 개념입니다. 사랑은 죄를 용서하는 것이라면 정의는 죄에 대해 합당한 벌을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십자가를 통해 사랑과 정의를 충족 시키셨습니다. 우리 대신 예수님으로 하여금 죄의 형벌을 지게 하셨고, 그로 인해 조건없는 용서를 가능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받아 누리는 구원은 법적으로만 완전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 하나님의 사랑도 함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다시 죄인이 되어 하나님의 은혜에서 추방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구원은 ‘아무도 흔들수 없는 완벽한 것’입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