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롬! 참 좋은 아침입니다!!
본문의 시에는 “ 곤고한 자가 마음이 상하여 그 근심을 여호와 앞에 토하는 기도” 라는 표제가 붙어 있습니다. 이 시는 아주 어려움 가운데 빠져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털어 놓을 수 없는 상한 마음을 하나님 앞에서 기로도 토해 내는 시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시가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갔을 때 당시의 답답하고 절망적인 마음을 하나님 앞에 아뢴 시라고 생각합니다. 바벨론 제국에 의해 멸망 당하기 직전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보다는 우상에 관심이 더 많았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성전 안에서도 바벨론이나 애굽 기타 다른 근동 지역 사람들이 섬기는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이유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 보다는 우상들을 섬기는 것이 자신들의 이기적인 욕구를 채우는데 더 적합했기 때문입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 갖고 있던 추악한 욕심을 내려 놓게 되는데, 우상 앞에서는 얼마든지 욕심을 부려도 전혀 양심에 찔리지 않았기 때문에 계속해서 더 큰 욕심을 부려도 문제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경쟁적으로 우상을 섬기던 유대인들이 어느 날 갑자기 패망해서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 갔습니다. 그제서야 정신이 든 것입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우상을 숭배하며 얼마나 양심이 병들었는지, 죄에 대해 무디어 졌는지를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게다가 시인은 육체에 심각한 질병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시인은 아마도 자신의 병과 유다의 운명을 연결 시킬 수 있는 제법 높은 위치에 있었던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시인이 죽을 병에 걸렸거나 아니면 다른 이유로 자신의 역할을 할 수 없는 처지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한창 일할 수 있는 나이에 그럴 수 없는 자신의 처지와 함께 끌려온 동족들의 절망적인 상황을 하나님 앞에 나아가 고하고 다시 은총을 구하는 내용이 본문의 시입니다. 꼭 기억해야할 것은 우리의 수명은 절대로 보장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시편 기자는 “인생이 칠십이요 길면 팔심”이라고 했는데, 그 기간도 보장된 것은 아닙니다. 어느 날 갑자기 역할을 접어야할 순간이 올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할이 주어졌을 때, 주어진 역할을 귀하게 여기고 감사하며 그 역할에 충실해야 합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처럼 주어진 역할을 하찮게 여기면 주어진 역할에 충실할 수 없습니다.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고 세월만 보내는 허망한 인생이 될 뿐입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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