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묵상

고린도전서 11장 - 애찬과 성찬

JVChurch 2022. 3. 14. 21:29

샬롬! 참 좋은 아침입니다!!

 

초대교회에는 애찬(Agafe meal)과 성찬(Sacrament)의 구별이 없었습니다. 애찬은 글자 그대로 서로 교제하고 사랑하기 위해 음식을 나누는 것입니다. 그리고 식사가 끝나갈 무렵에 주님을 기억하는 만찬을 함께 나누며 교제를 마쳤습니다. 그러다가 세월이 흘러 애찬과 성찬이 분리되어 오늘날 교회에서 하는 형태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에서 음식을 나누다 문제가 생겼습니다. 예배 마치고 음식을 나눌 때, 마음이 맞고 친분이 있는 사람들끼리 앉아 교제하면서 파당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음식을 지나치게 많이 먹는 사람들이 있어 문제가 되었습니다. 교회 오기 전에 아무것도 먹지 않고 와서는 음식을 필요 이상으로 많이 먹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먹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그런 것을 감안해서 음식을 많이 해도 문제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남은 음식을 가져가는 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다른 지체들이 충분히 먹고 남는 경우 필요한 사람들이 가져가면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먹기도 전에 충분히 먹고 또 싸가기까지 하면서 음식을 아무리 많이 해도 늘 부족하고 먹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던 것입니다. 사실 이런 문제는 2,000년이 지난 오늘날 교회에서도 부끄럽지만 있는 일입니다. 별것 아닌 그런 사소한 일로 마음 상하는 사람들이 오늘날 교회에서도 있는 것을 보면, 사람의 욕심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함이 없어 보입니다. 이렇게 사람의 욕심 때문에 고린도교회에서 애찬과 성찬의 의미가 무색해졌습니다. 애찬에서 이미 마음들이 상해 성찬으로 은혜롭게 마무리 하는 것이 불가능해졌습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성찬의 의미를 다시 설명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주의 만찬은 예수님께서 유월절 어린양처럼 죽으심으로 사람들에게 구원을 베푸신 사실을 보여 주는 예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만찬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서로가 주안에 한 몸, 한 지체라는 사실을 확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주의 만찬에 참여함으로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함께 참여하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주님의 만찬은 주님께서 죽으심으로 이루신 새 언약을 기억해야하며 동시에 주님을 전하는 수단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엉망이 되게 하는 것은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없이 자기만 생각하는 욕심입니다. 결국 이기심을 다스리지 못하면 거룩한 주의 식탁을 통해서도 하나 됨을 확인하지 못하고 오히려 분리되는 비극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참 좋은 아침입니다 !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