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주일을 맞을 때마다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로버트 토마스 선교사입니다. 영국 웨일즈에서 회중교회 목사의 아들로 출생하여 런던대학을 졸업한 토마스 선교사는 20대 초반에 중국에 선교사로 입국합니다. 그는 갓 결혼한 아내 캐롤라인 갓프리와 함께 1863년 12월 중국에서 사역을 시작했는데, 임신중이었던 캐롤라인은 이국생활에서 오는 충격과 풍토병으로 유산하고 그 다음 해 3월에 세상을 떠납니다. 아내를 잃은 슬픔과 충격으로 절망 가운데 살아가던 토마스 선교사는 조선에서 천주교 박해가 심하다는 말을 듣고 조선선교를 꿈꾸게 됩니다. 그 후 토마스 선교사는 황해도 연안 창린도에 들어 와 두달 반을 머물며 한문성경을 사람들에게 나눠줍니다. 그렇게 전도하며 한국어를 익히게 됩니다.
중국에서 조선 입국의 기회를 엿보던 토마스 선교사는 1866년 상선 제너럴셔먼호에 통역관겸 안내원 자격으로 승선하게 됩니다. 당시 조선은 외국과의 교역을 국법으로 금하는 쇄국정책을 쓰고 있었습니다. 교역을 요구하는 제너럴셔먼호를 향해 당시 평양감사 박규수는 불을 지르게 했습니다. 배가 불타자 승선하고 있던 사람들은 어쩔 수없이 강으로 뛰어 내려 강변으로 헤엄쳐 나왔지만, 대기 하고 있던 병졸들이 닥치는대로 선원들의 목을 베었습니다. 토마스 선교사도 성경을 품고 뭍으로 나와 성경을 이곳 저곳으로 뿌렸습니다. 자기를 죽이려는 박춘권에게도 성경을 주었으니 받지 않자, 모래 사장에 던졌습니다. 그리고 순교당했는데, 그 때 토마스 선교사의 나이 26세였습니다.
박춘권은 자기 칼에 죽어간 서양 사람이 건넨 책을 처음에는 받지 않았으나, 상황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때 한권을 챙겨갔습니다. 박춘권은 어느 날 심경에 변화가 생겨 성경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 후 박춘권은 예수님을 믿고 훗날 안주교회의 영수가 됩니다. 영수라는 직분은 장로 직분자 중에 목회자 역할을 하는 일종의 평신도 목회자입니다. 그리고 박춘권의 조카 이영태는 레이놀즈 선교사와 함께 한글성경 2/3를 번역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또 최치량이라는 12살난 소년이 토마스 선교사가 흩뿌린 성경 3권을 주워다가 한 권을 영문부사 박영식에게 줍니다. 박영식은 성경을 뜯어 벽지로 사용했는데, 박영식의 집터에 훗날 평양 최초의 교회인 널다리 교회가 세워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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