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묵상

역대상 11장 - 다윗의 등극과 예루살렘 건설

JVChurch 2024. 1. 16. 19:57

샬롬! 참 좋은 아침입니다!!

 

             사울이 죽은 후 다윗은 유다 지파의 본거지였던 헤브론에 거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거기서 7년 6개월 동안 유다지파를 다스렸습니다. 그 후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다윗을 왕으로 추대했고, 다윗은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맺게 됩니다. 언약의 내용은 다윗은 백성들을 잘 보호하며 성실하게 다스리겠다는 것이었으며, 백성들은 다윗에게 충성과 헌신을 다할 것이라는 다짐이었습니다. 언약식이 끝나자 장로들은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웠는데,  이것은 다윗의 입장에서 보면 세번째 기름부음 받는 사건이었습니다. 다윗은 소년 시절 사무엘을 통해 기름부음을 받았고, 유다 지파의 왕이 될 때도 기름부음을 받았고, 온 이스라엘 지파의 왕이 되며 세번째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다윗 지금까지 숱한 역경과 죽음의 고비를 넘긴 끝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던 것입니다. 왕이 된 다윗은 군사를 일으켜 여부스를 제압하고 그 땅을 차지합니다. 처음에 그 땅은 다윗의 이름을 따서 ‘다윗성’으로 불리다가 예루살렘 즉 평화의 도시로 불리게 됩니다. 다윗에 의해 건설된 예루살렘은 정치와 종교 문화의 중심지로 발전했고, 분열 왕국 시대에는 남 왕국 유다의 수도로 계속해서 발전하게 됩니다. 여부스 땅은 여호수아와 사사시대에도 정복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왕이 된 이후에 비로소 그 땅을 정복하고 수도로 삼게 됩니다. 예루살렘은 한 나라의 수도가 되기에는 더없이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성 옆 기드론 골짜기에 기혼 샘과 엔로겔이라는 식수원이 있어 가장 중요한 식수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예루살렘은 지리적으로 남서쪽에 흰놈의 골짜기, 동쪽에 기드론 골짜기가 있고, 그 주위를 전망산, 감람산등이 둘러싸고 있어 도시 방어에 용이한 천혜의 요새였습니다. 또 예루살렘은 교통의 요지로 동서남북 사방을 잇는 도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은 정치, 행정, 종교의 중심도시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특별히 예루살렘은 여부스 족속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어떤 지파에게도 그 땅이 분배되지 않았던 중립적인 도시였습니다. 그래서 특정 지파의 협조나 희생없이 온 이스라엘의 수도로 어렵지 않게 정할 수 있었습니다. 다윗은 정치적인 입지가 든든해진 이후 다윗 성이라는 이름 대신 예루살렘이라는 새 이름으로 불리게 됩니다. 참 좋은 아침입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