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 칼럼

따뜻한 사람

JVChurch 2024. 2. 26. 00:01

           몇 년 전에 로드아일랜드 프로비던스에 있는 주청사를 찾은 적이 있습니다. 아주 고풍스러우면서도 웅장한 대리석 건물입니다. 미국에서는 두번째, 세계에서는 네번째로 큰 돔이 돋보이는 멋진 건물입니다. 빨리보고싶은 마음에, 서둘러 주차를 하려는데 미터기가 작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주차할 수도 없고 안할 수도없는 난감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 지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분이 자기 동전을 여러 미터기에 넣어 보더니 여기에 주차하라고 손짓을 했습니다. 기대하지 않았던 참 따뜻한 친절이었습니다. 마음속에 따뜻한 온기가 퍼지는 것 같았습니다. ‘같은 상황이라면 나도 저 사람처럼 타인에게 따뜻했을까?’ 자신이 없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랬던 기억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말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라는 구절로 시작되는 안도현님의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가 생각났습니다. 자주 들어 식상한 얘기지만, 우리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따뜻하기를 바랍니다. 기대한 친절을 얻지 못하면, 이것이 차가운 이 세상의 현실이라는 듯, 기대하지 말아야할 것을 기대했다는 듯, 냉소합니다. 내가 먼저 다른 사람에게 따뜻한 사람이 되어줄 마음도 없으면서 말입니다. 

 

         예수님은 참 따뜻한 분이셨습니다. 세상이 여러가지 근거를 내세우며 사람을 차별하는 것이 당연하고 심지어 당사자들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세리나 창기들에게도 예수님은 참 따뜻하셨습니다. 귀한 사람과 천한 사람을 구분 짓는 당시 사람들의 사회문화적인 관습은 예수님께는 무의미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구분하지 않으시고 누구에게나 따뜻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안에서는 유대인이나 이방인, 남자와 여자, 귀족과 노예라는 콘크리트 벽 보다도 더 완고한 벽이 마치 봄볓에 눈이 녹듯 맥없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사순절은 예수님의 따뜻함의 기억하며 우리도 누군가에게 따뜻한 사람이 되어야 겠다는 다짐과 결단 그리고 작은 실행이 있는 계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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