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 칼럼 129

따뜻한 사람

몇 년 전에 로드아일랜드 프로비던스에 있는 주청사를 찾은 적이 있습니다. 아주 고풍스러우면서도 웅장한 대리석 건물입니다. 미국에서는 두번째, 세계에서는 네번째로 큰 돔이 돋보이는 멋진 건물입니다. 빨리보고싶은 마음에, 서둘러 주차를 하려는데 미터기가 작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주차할 수도 없고 안할 수도없는 난감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 지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분이 자기 동전을 여러 미터기에 넣어 보더니 여기에 주차하라고 손짓을 했습니다. 기대하지 않았던 참 따뜻한 친절이었습니다. 마음속에 따뜻한 온기가 퍼지는 것 같았습니다. ‘같은 상황이라면 나도 저 사람처럼 타인에게 따뜻했을까?’ 자신이 없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랬던 기억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연탄재 함부..

목양 칼럼 2024.02.26

광야의 시간

몇 년 전 노회 목회자들과 함께 처음으로 성지순례를 했습니다. 그 때 유대광야를 보았습니다. 마치 시간의 멈춘 것처럼 참 한적하고 조용했습니다. 양떼를 몰고 지나가는 베두인 소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조급함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느긋하고 여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그 때, 그곳에 며칠 만이라도 그게 안된다면 몇 시간만이라도 머물고 싶었습니다. 실컷 유대광야를 보고 싶었고 베두인들의 삶의 모습도 눈에 넣고 싶었습니다. 바램과 달리, 그런 시간은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바쁘게 서두르지 않으면 다 소화할 수 없는 빠듯한 여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서둘러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광야로 인도하시고 그곳에서 40년을 지나게 하셨습니다. 광야..

목양 칼럼 2024.02.19

재의 수요일

오는 14일 수요일은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 혹은 ‘참회의 수요일'입니다. 그리고 이날 부터 부활절인 오는 3월 31일까지 주일을 뺀 나머지 40일 동안이 ‘사순절(Lent)입니다. 초대교회에서는 주로 부활절 새벽에 세례가 베풀어 졌는데, 세례 예비자들은 사순절 기간 동안 ‘회개'를 통해 세례를 준비하였습니다. 또 사순절 기간은 이미 세례를 받은 이들도 자신이 받은 세례를 되돌아 보고 자신을 갱신하는 일에 힘썼습니다. 시대나 교파에 따라 사순절을 보내는 방식은 조금씩 달랐지만, 내용은 다르지 않아 주로 그리스도의 수난을 깊이 묵상하며 자신을 되돌아 보고 참회하고 주의 은총을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재는 ‘참회와 회개’ 또 ‘정화와 순수’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

목양 칼럼 2024.02.11

모든 존재는 고유합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존재는 고유합니다. 모양도 크기도 존재하는 이유도 역할도 다 고유합니다. 책은 책의 역할을 위해 존재하고 시계는 시계의 역할을 위해 존재합니다. 책을 향해 왜 시계의 역할을 하지 못하느냐? 고 타박하면 그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책은 책의 역할을 할 때 책다운 것이고 사진은 사진의 역할을 할 때 소중합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75억의 인구 중에 같은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습니다. 모두 다 고유합니다. 생김새도 다르고 성품도 다르고 가치관도 다르고 세계관도 다릅니다. 좋아하는 것이 다르고, 잘하는 것도 다르고, 못하는 것도 다릅니다. 바울과 아볼로가 다른 것은 자연스런 것입니다. 바울은 헬라철학에 능하고 유대 율법에 능통한 당대 최고의 학자였습니다. 또 복음에 대한 열정도 대단했습니다. 그..

목양 칼럼 2024.02.05

一人百步不如百人一步

‘일인백보 불여 백인일보(一人百步 不如 百人一步)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 사람이 백 걸음을 걷는 것보다 백 사람이 한 걸음을 걷는 것이 낫다는 뜻입니다. 지도자 한 사람이 앞서 100보를 나가는 것 보다 다함께 마음을 모아 1보를 내 딛는 것이 낫다는 말입니다. 교회에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이유는 교회의 본질은 일이 아니라,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사도가 보낸 서신서에 보면 수신 교회에 대한 감사가 빠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감사가 어떤 일의 결과나 성과에 대한 것이 아니라, 항상 교회의 지체인 성도 그 자체에 대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교회에서 하는 사역 자체가 무의미 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사역이 없으면 교회는 절대로 건강할 수도 없고, 심지어 생존도 불가능합니다. 사역은 꼭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목양 칼럼 2024.01.29

나만의 속도

많이들 마라톤을 인생에 비유합니다. 마라톤 경기를 보다보면 “먼저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된 자가 먼저 된다"는 성경의 말씀이 실감날 때가 참 많습니다. 초반에 선두권을 형성한 선수들이 우승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런 선수들은 시간이 지나며 점점 선두권에서 밀려나 나중에는 잘 보이지도 않습니다. 대부분은 35km 지점에서 선두권을 형성한 선두들 중에 우승자가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선수들의 특징은 다른 선수들과 비교하지 않고 자기만의 속도로 달린 겁니다. 경쟁자가 앞서 나간다고 속도를 높이지도 않고, 경쟁자가 속도를 늦춘다고 덩달아 속도를 늦춘 것도 아닙니다. “인간은 타인의 눈길에서 지옥을 경험한다"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 장폴 사르트르의 말입니다. 이 말은 우리가 사람들과 비교하고 다른 사..

목양 칼럼 2024.01.22

손실회피성향

심리학 용어에 ‘손실회피성향’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같은 정도의 이익을 얻고, 같은 정도의 손실을 보게 되었다면 이익으로 얻은 기쁨 보다는 손실로 인한 괴로움을 더욱 더 크게 느끼는 심리기제를 말합니다. 가령 어떤 사람이 투자를 해서 지난 달에는 만불의 이익을 보고, 이번 달에는 만불을 손해 봤다면 손해 본 것도 없고 이익 본 것도 없어 상실감을 전혀 느끼지 않을 것 같은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심리적으로는 손실에 의한 괴로움만 남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만불의 이익을 얻었을 때의 기쁨보다는 만불을 잃었을 때의 고통을 주로 기억한다는 것입니다. 평소에 짜증나고 화나고 우울한 기억은 잘 나면서도 기뻤던 기억은 잘 나지 않는 것도 같은 원리입니다. 가끔 교우들에게 한 주를 지나며 혹 한달을 지..

목양 칼럼 2024.01.15

기뻐하는 공동체

군대있을 때, 제일 힘들었던 것은 100km 행군이었습니다. 오전 8시에 숙영지를 떠나 다음 날 아침 8시에 주둔지에 도착하는 일정입니다. 50분 걷고 10분 쉬기를 반복하며 24시간을 걷습니다. 물론 식사 시간도 있고, 그 때는 좀 휴식 시간이 깁니다.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은 새벽 2시에서 4시경입니다. 졸음이 쏟아지고 다리가 풀립니다. 메고 있는 군장과 총의 무게에 짓눌려 저절로 허리가 숙여집니다. 고통 때문에 저절로 인상이 써지고 짜증이 납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도 밝게 웃으며 다른 동료들에게 힘을 주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낙오 직전에 있는 동료의 총까지 대신 메주는 모습은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그 때 부터 그 친구가 새롭게 보였습니다. 기뻐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새삼 느낄 수 있었..

목양 칼럼 2024.01.08

또 다른 시작을 위하여

해마다 이 맘때가 되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습니다. “세월이 참 빠르다” “참 다사다난한 한해 였다” 어렸을 때는 시간이 참 안갔는데, 요즘은 왜 이렇게 빠른지 정말 쏜살 같습니다. 한 해를 시작할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 새 한 해의 끝에 서 있습니다. 늘 이 맘 때면 여러가지 생각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갑니다. 스치는 많은 생각 중에 가장 큰 것은 감사입니다. 부족했지만 맡겨주신 소임을 다했다는 것이 감사합니다. 불과 몇 시간 후면 2024년이라는 새로운 이름의 시간이 시작됩니다. 새로운 시작을 앞에 두고 꼭 필요한 것은 감사입니다. 감사는 과거를 긍정하게 하고 새로운 것을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줍니다. 무엇보다도 살아 있다는 것이 감사하고 건강하다는 것이 감사하고 여전히 주님의 이름을 부를 수 있다..

목양 칼럼 2023.12.31

성탄의 영광

교회에서 자주 사용하는 ‘영광’ 특별히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말은 대단히 상반된 의미로 쓰입니다. 피조물인 인간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창조주 하나님의 크고 위대하신 능력이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도록 눈앞에 드러났을 때, 그것을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말합니다. 가령 출애굽 당시 홍해를 가르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신 사건을 통해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감격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영광’에는 정반대의 측면도 있습니다. 위대하신 하나님이 인간의 구원을 위해 스스로 자신을 낮추었을 때도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말을 씁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죄없으신 예수님께서 스스로 죄인이 되셔서 십자가에 처형되신 사건입니다. 성탄의 영광은 후자에 속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가..

목양 칼럼 2023.12.25